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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없지만 이게 '답'이다"…헤이리도 제친 '미술 공장' 가보니

뉴스앤포스트입력 2025-11-07 18:40
 경기도 고양시의 삼송테크노밸리가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심장부로 떠오르고 있다. 겉보기엔 기계 소음과 지게차가 오가는 공장 지대 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7미터가 넘는 압도적인 층고의 작업실에서는 이원희, 이불, 이건용, 임옥상 등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중진 및 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탄생하고 있다. 이미 30명에 가까운 주요 작가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으며, 특히 세계적인 작가 이불은 3개 호실을 터서 대형 작품 제작에 몰두하는 등 삼송은 명실상부한 현대미술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평창동이나 부암동의 주택가를 작업실로 사용하던 모습은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작가들이 하나같이 이곳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압도적인 편의성, 특히 물류 동선에 있다. 2층이나 3층에 위치한 작업실 문 앞까지 차량이 직접 진입하는 '도어투도어' 시스템 덕분이다. 거대한 조각이나 대형 캔버스를 엘리베이터로 옮겨 지하주차장까지 나르는 수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최근 청계천에 대형 공공조각을 선보인 이수경 작가 역시 이곳에서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는 "해외 큐레이터나 컬렉터가 오면 이곳으로 바로 안내한다"며 작업실이 작품 보관을 위한 수장고이자 '쇼룸'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밝혔다. 높은 층고와 넓은 공간은 대형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단지 물류의 편리함만이 전부는 아니다. 단독 작업실이 가질 수 없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역시 작가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요인이다. 중앙에서 관리하는 냉난방 시설과 철저한 보안은 기본이고, 작품에 치명적인 여름철 습기와 곰팡이, 누수 문제까지 해결해준다. 작가 임옥상은 "바깥에 단독 작업실을 얻으면 보안과 냉난방 해결이 가장 어렵다"며 지식산업센터의 관리 시스템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장점은 비단 삼송뿐 아니라 하남, 파주, 동탄 등 수도권의 다른 지식산업센터로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높은 서울 월세를 감당하기보다 대출을 받아 분양받거나 월세를 내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젊은 작가들의 선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지식산업센터로의 이전은 한국 미술계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대형 조각이나 회화 작가들이 수도권 지식산업센터로 향하는 반면, 장르별 특성에 따라 다른 지역에 군집하는 현상도 뚜렷하다.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에는 전자부품 조달이 쉬워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모여들고, 철공소가 밀집한 문래동은 전통적인 조각가들의 아지트로 남아있다. 하지만 문래동 등 구도심은 높은 임대료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직면해있다. 한 화랑 대표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보다 삼송에 더 많은 작가가 살 것"이라며, 지식산업센터가 예술가에게 낭만이나 '멋'은 없을지 몰라도,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답'이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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